[아트코칭 S-15] "용서 값싼은혜"

 [아트코칭 S-15] "용서 값싼은혜"

  용서라는 말은 참으로 쉬운거같다. 

배재 고등학교 야구부 사과 TO 광주 일고 야구부

    왜냐하면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걸린 매듭을 풀어 주고, 얼어붙은 관계에 다시 봄이 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갈등 앞에서 쉽게 용서를 말한다. 이제 그만 잊어라. 사과했으니 받아줘야 하지 않겠느냐. 아이들이 모르고 한 일인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 

    그러나 용서는 언제나 쉽지만은 않은말이다. 상처가 아직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 상처 위에 성급하게 용서라는 붕대를 감아 버리면 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은폐가 된다. 피해자가 아직 울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먼저 화해를 이야기할 때, 용서는 때로 가장 잔인한 폭력이 된다. 

    영화 속 이정향 감독은 그 불편한 진실을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세상은 그 고통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하면서도 쉽게 말한다. 하나님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부처님이라면 자비를 베푸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피해자의 아픔을 품으려는 마음보다, 불편한 현실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주변의 조급함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최근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벌어진 서울 배재고 야구부의 조롱 구호 사태를 바라보며 그 장면이 떠올랐다. 광주일고 선수들을 향해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과 폄훼 논란을 가벼운 밈처럼 소비한 외침은, 야구장의 뜨거운 응원으로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장난이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은 역사적 상처를 다시 헤집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늘 비슷한 말들이 뒤따른다. 학생들이 뭘 알겠느냐. 사과하러 간다니 이제 그만하자.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인데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 말은 온화해 보이지만, 그 말들이 향하는 곳은 종종 피해자의 침묵이다. 

    사과를 받는 쪽은 아직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없는데, 세상은 벌써 화해의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왜 그것이 잘못인지 배우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얼마나 깊이 다쳤는지 마주하는 일. 그 긴 과정 없이 고개만 숙이는 사과는 쉽게 징계를 줄이기 위한 몸짓이 된다. 그리고 그 사과를 근거로 이제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피해자는 또 한 번 외로워진다.

     우리는 사과했는데 왜 아직도 화를 내느냐는 말은 결국 피해자의 고통을 설명해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되기 때문이다. 용서는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지, 가해자나 주변인이 요구할 수 있는 의무가 아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상처 위에 화해의 날짜를 정할 수 없다. 특히 역사적 비극과 지역 혐오가 얽힌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1980년 광주의 아픔은 몇 마디 농담이나 구호로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가족사였고, 누군가의 삶이었고, 아직도 현재형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다. 

    아이들이 뭘 알겠느냐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그 말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기회를 빼앗는다. 잘못을 알게 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일은 아이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어른으로 자라게 하기 위한 일이다. 책임 없는 관용은 자비가 아니라 방임이 될 수 있다. 신학자 본회퍼는 대가 없는 용서를 '값싼 은혜'라고 경고했다. 

    진정한 회개는 말 한마디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깊이 들여다보고, 그 잘못이 남긴 상처를 감당하며,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달라지는 일이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이 빠진 용서는 결국 혐오와 폭력을 세탁하는 말이 되고 만다. 야구장에서 울려 퍼진 조롱의 구호는 어쩌면 온라인에서 너무 쉽게 소비되는 혐오의 언어가 현실로 흘러나온 장면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역사적 비극을 도발의 재료로 삼는 문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잘못을 가볍게 넘기고, 사과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는 사회에서 그런 문화는 자란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용서가 아니다. 누가 더 빨리 화해의 손을 잡는가를 겨루는 일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 책임을 묻는 일, 그리고 피해자가 자신의 속도로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일이다. 용서는 망각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니다. 충분한 성찰과 책임, 그리고 오래 걸리는 변화의 시간 위에서만 비로소 피어날 수 있다. 그 시간을 건너뛰고 서둘러 용서를 말한다면, 우리는 갈등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아직 울고 있다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말은 이제 용서하세요가 아니라 '당신의 아픔을 잊지 않겠습니다'일 것이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대표방송은 대한인터넷방송협회장 영상편지입니다 나날이 새로운 신화창조의 일상적인 경이를 맞이 하기를 학수고대 합니다. 

[대한인터넷방송협회장 영상편지글], From Face book on July 6, 2026.

Epilog,

나는 45년 Bank of America를 2년 전에 퇴직한 후 국제전문코치로 살아가는 시니어이다. 

30대에 잊지못할 사건을 겪고,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올해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바이오 피드백을 통해, 내 몸 전체가 현재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고 호흡 등 세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어 도움이 되고 좋았다. 

상담을 할 때도 그 한시간 동안 온전히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어 좋았다. 신기한 것은 대학 전공으로 인해 '미술심리치료사'가 되었고 대학원 전공으로 인해 심리학 그리고 전문 코치로 22년을 '사람'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고 때로 도와주는 직업을 하고 있는 내가, 그 놈의 트라우마를 저글링하는 유리공 처럼 아직까지도 어쩔줄 몰라 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고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트라우마는 그런 것이다. 간단하지가 않다.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닌데 아니 물리적으로 그 상횡에 있지도 않은데, 내 트라우마는 그때 그 시간에 멈추어 갇혀있다. Trap에 걸린 것이다. 

수박여(誰縛汝): 누가 너를 묶었느냐?

선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화두를 떠올린다. 이 나이가 된 나도 힘든데 '용서'란 청소년들에게 쉽지 않은 이슈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맺지 말고 풀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홧팅~~~~ㅠㅠ

당신에게 용서란 어떤건가요? 용서를 어떻게 다뤄야 되나요? 어떻게 하면 용서할 수 있나요?

Written by 이정화 아트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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